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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시청에서 겪었던 이야기 6 윤주영 조회수 : 711
초등학교 4학년쯤으로 기억합니다. 동네 아이들과 골프공 서리를 했습니다. 좋은 말로 서리, 사실 도둑질에 가까웠습니다. 그물망 뒤에 모여 있는 골프공 몇 개씩을 들고 왔습니다. 몇 걸음 못가서 아저씨에게 걸렸습니다. 눈물 쏙 나게 호되게 혼이 났습니다.
 
1호선을 타고 서울역을 오가던 재수생 때입니다. 횟수가 정해져있는 전철 패스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어느 날 교통비를 아끼고 싶었나봅니다. 개찰구를 뛰어넘다가 발이 걸려서 얼굴이 땅에 닿았습니다. 코피가 터졌습니다. 어지럼증도 생겨서 부천역 앞 복음내과에 한참을 다녔습니다. 병원비가 꽤 들었습니다.
 
그 뒤로는, 누구나 그렇듯이 일탈을 멀리하려 애를 쓰며 살아왔습니다.
 
시청으로 출근하고 며칠 되지 않은 날, 내 출장여비를 지급하겠다는 결재 문서가 올라왔습니다. 의아했습니다. 난 출장을 간 적이 없었습니다. 대강의 사정을 들어본 후,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부서 동료들에게 말했습니다. 다시는 이러지 마시라고. 나는 물론이고 어떠한 경우에도 예외는 없다고.
 
1년쯤 지나고, 어느 시민단체에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지자체 감사부서 책임자들과 관련된 정보공개 청구를 했습니다. 출장여비 수령현황. 공개된 내용을 보니 나는 평균보다 현저하게 적은 금액을 받았습니다. 거의 꼴찌였습니다. 현장을 멀리하고 책상 앞에만 있었다는 오해를 받을 재료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스스로에게는 당당할 수 있었습니다.
 
원래의 직업에 비해서 공직에 입문하면서 소득이 줄어든 게 사실이었습니다. 아쉬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입니다.
 
저녁시간이나 주말에 초과근무를 하면 수당이 나왔습니다. 가끔씩 마음에 유혹이 찾아왔습니다. 공부해야 할 것들도, 검토해야 할 것들도 많다는 핑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집으로 서류를 싸올지언정 부득불 불가피한 경우에만 초과근무를 했습니다. 그래야만 마음이 편했습니다.
 
출장여비와 초과근무수당을 바라보는 시선은 제법 엇갈립니다.
 
언론에 심심치 않게 사건이 등장하기도 하고, 공무원들에 대한 비판의 주제가 되기도 합니다. 반면 실제로 현장업무나 격무에 시달리는 공무원들의 입장에서는, 충분한 보상도 주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획일적인 비판이나 과도한 의심이 있을 때마다 맥이 풀리고 의욕이 꺾이기도 합니다.
 
사실 딱 떨어지는 답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개인의 양심을 최대한 신뢰하면서 동시에 청렴한 조직문화를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수밖에 없습니다. 아울러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작은 일에서부터 욕심을 비워내는 리더의 자세가 아닐까 합니다.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절대로 없다고 합니다.
 
이렇고 저러한 방법으로 점검을 강화하면서, 여비와 초과근무수당과 관련해서 부천시 공무원들에게 가끔은 원망과 하소연을 듣기도 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익명 또는 실명의 편지로 당신의 안타깝고 억울한 사정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이라면 공감의 마음을 담아 좀 더 따뜻한 답장을 보냈을 텐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엄청난 격무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을 많은 분들에게, 허용되는 범위에서나마 충분한 심적, 물적 보상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덕분에 나도 오늘 부스터 샷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잘 마쳤습니다.